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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 time ago

인재고르기에 대해 => 인재되기 답..

by dude C 2010. 5. 31.

안녕하십니까! 어느 촌부입니다. 근 1년만에 글을 올리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청아및 동서병원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편안함이 충만 했는지요?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디 직장에 다니기가 쉽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어쩝니까 다녀야지요.. 물론 직장에서 보람을 찾고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과연 그런 사람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부분 마지 못해서 다니며, 가족을 생각하며, 불안한 미래을 생각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입니다.
직장에는 직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직책은 공식된 권한이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면 권력이라고도 볼수 있지요. 그 권한은 사람의 지적 수준이나 내면의 성실함 그리고 넓은 성품과는 아무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권한에 걸맞는 성품과 인덕을 갖추길 원합니다. 이 덕성이 부족하게 되면 권력과 권한만 남게 되어 가볍고 껍데기에 불과한 직책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진의 입장으로서는 이러한 실수를 범하지 않을려고 인재찾기니 인재을 고르는 방법이니 하여 나름대로 고심하고 연구하고 서적도 뒤적여 보지만 별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마도 청아재단도 별반 다를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꼭 기업에서 말하는 인재가 아니라도 개인간의 좋은 사람을 고를때나 이성또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도 어떤 사람이 정말로 미래가 좋은 사람인지를 알기는 무척 힘이 듭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두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사람을 제대로 판단치 못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내면보다는 외형에 치중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직책과도 일면상통합니다. 예를 들어서 그사람의 성품이 어떠하며 어느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할려고 하면 우선 자기 자신의 실력이 높아야 상대방을 제대로 볼 것인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은 높이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실력있는 사람이 내 주위에 와 주길 기대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학벌이나 직위 그리고 친절로서 그 사람의 대부분을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외형으로 판단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면을 볼줄 아는 능력이 부족하기에 어쩔 수 없이 외형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심리 입니다.
청아재단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청아의료재단 고객만족헌장"라는 것이 뜹니다. 그 내용을 본면 고객에 대한 친절과 봉사에 가장 최우선을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의료계도 일종의 서비스계열이기에 고객에 대한 친절봉사는 기본중에 기본입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감정이 가미되어 있기에 더더욱 중시 여겨야 할 덕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청아의료재단에서 진심으로 친절 봉사를 함으로서 고객에게 만족을 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저 친절교육을 한답시고 친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객에게 형식적 가식적으로 고개를 숙인다고 해서 그게 과연 고객만족을 제대로 한것일까요?......고객들은 사람입니다. 어린애들도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해서 안아주는 사람과 형식적으로 안아주는 사람을 금방 구분하는데 하물며 성인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강하질 않습니다. 나약합니다. 천성이 착하며 타인들에게 봉사를 하고 싶어도 일단은 자신의 안정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즉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봉사의 마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행정적 업무가 가중하거나 아니면 윗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면 자동적으로 봉사의 마음은 마음속 깊이 들어가 버리게 됩니다. 윗사람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 행정업무에 먼저 신경이 가게 되면 선한 마음은 숨고 짜증의 마음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윗사람이 진정으로 가져야 할 첫번째 조건이 바로 덕입니다. 병원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자리가 의사와 간호사입니다. 이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지요. 그런데 수간호사라는 자리도 결국은 수직 계급의 중간에 있기 때문에 역시나 윗사람에게 문책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 아랫사람을 누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동으로 밑에 있는 간호사들도 역시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 행정업무에 치중을 하게 되고 윗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무슨 작은 사고라고 터져버리면 순간 겁이 납니다. 주의가 어두컴컴해 집니다. 손을 뻗쳐 보지만 누구하나 도와줄 생각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 공포와 두려움으로 부터 일단 탈출하고픈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친절이고 나발이고 동료고 뭐고가 없습니다. 일단 벗어나고 보자는 것이 인간의 숨겨진 본성입니다. 그래서 책임회피가 강하게 일어나고 부정이 강하게 나오게 되며, 누군가가 제물의 상대를 찾게 되며, 변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잘못을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말밖으로 끄집어 내질 못합니다. ....... 어떻습니까?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많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나약한 것입니다. 이런 나약함을 가진 것이 인간인데 위사람이 자신의 문책을 당하기 싫어서 아랫사람들을 공식적 권한으로서 누르게 되면 병원의 원척적 슬로건인 친절봉사는 이미 물건너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권위적 사람, 공식적 권한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미 아랫사람들로 부터 인사는 받을 지언정 마음속으로 따를리는 없겠지요..
일을 함에 일도 똑부러지게 일을 잘하고 행정업무도 잘하면서 고객에게 진정으로 친절봉사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자신있게 스스로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지요? .......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오랜 경륜을 가지고 다양한 경험을 가지며, 세상의 힘든 일을 한 사람들은 모든것을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인재가 꼭 무슨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여 병원에 엄청난 이익을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병원에서 가장 원척적 인재?

 

글을 올렸는데 글이 모두 올라가지 못해서 계속 이어서 쓸까 합니다.
병원에서 가장 원천적인 인재는 다름이 아니라 고객에게 진정으로 친절을 배푸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나쁜짓을 했다고 할때 용서가 어느정도 되는 것 처럼 행정업무을 잘 못하거나 직원들과 융화가 좀 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내칠수는 없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가장 많은 이익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을 받은 고객은 다시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입소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 것인지는 잘 알고 있을 것 아닙니까 ?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어쩌면 고객에게 진정어린 친절봉사를 하는 사람은 다른사람들과는 당연히 틀린생각을 가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왜야하면 모든 원천을 고객에게 맞추고 있기에 이에 따르는 언행이 일반 직원들과는 틀리는 것이 어찌보면 당현한 것이고 이게 좀 틀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판단이 어려운 두번째 요소는 바로 인간이란 자기 중심적사고관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을 제대로 보기 힘듭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누구나 할 것없이 자신이 이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여깁니다. 자신은 주인공이고 타인들은 모두 조연이자 엑스트라입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에서 사물을 바라보게 되고 생각하고 판단을 합니다. 그래서 이미 객관성을 완전히 가지기는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아니 객관성를 가질 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이러할 진대 단지 아랫사람의 보고 만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자체에 모순이 있습니다.
중간계급에 있는 사람은 윗사람에게 보고시에 절대로 자신에게 불리하게 보고를 하지 않습니다. 불리하게 보고 했다가는 무슨 불이익이 닥칠지 모르는데 어찌 사실 그대로를 보고 하겠는지요? 이것을 위사람들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보고내용으로 사람을 평각하지 말고 이곳 저곳에서 두루두루 말을 들어보아야 하며, 어느부분에서 잘못이 있고 어느부분에서 잘하는 것이 있는지를 판단할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고 분명 잘하는 분야와 못하는 분야는 있습니다. 병원의 입장에서 원천적인 것은 분명 고객에게 진심어린 친절봉사을 하는 사람이 최고의 인재입니다. 물론 행정적인 부분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을 평가하기란 정말로 힘이 듭니다. 머리가 엄청나게 좋고 학벌이 뛰어나고 실력이 좋은 것도 분명 인재인것은 사실이지만,자만과 교만이 가득하다면 과연 고객들이 계속 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실력은 조금 떨어져도 따뜻하게 고객에게 대하여 주는 그런 사람이 더 많은 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원천을 지킨다는것 기본에 충실해야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란 그 어떤 것보다 어려운것입니다. 왜야하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흔히 말하는 조직에서는 그 원천을 무덤속에 파묻혀 버리기 쉽상이기 때문입니다. 눈에보이는 현란함 행정업무와 스트레스 위사람의 권력행사 그리고 눈치등으로 그 기본을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누가 진정한 충신인지에 대해서 글을 올려 볼까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어느촌부입니다.
첫번째 인재고르기에서는 원천에 충실한자가 인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두번째로 누가 진정한 충신인지에 대해서 글을 올려 볼까 합니다.

사실 충신이라는 말은 인재라는 말과는 좀 틀린 개념같이 보이지만 충신이 있어야 윗사람의 흩어진 모습을 충언할수 있으며, 그 충언을 받아들이므로서 결국은 전체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에 충신도 인재의 한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충신이라는 개념은 꼭 기업체나 조직체에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대 개인간의 관계에서도 충신은 필요합니다. 즉 믿음이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나 궁금해 하는 대목이기도 한데 사람의 속마음을 알수가 없으니 그저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과 천성은 아무리 숨길려고 해도 조금이라도 겉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기미를 잘 포착하면 충분히 그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배신을 때릴 사람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기미를 포착할 수 있을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무수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항상 변화하는 것이라서 제대로 알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어도 절반이라도 안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충신이라는 것도 결국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하며, 이사람이 나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서로간에 충만되어야 충신이 성립됩니다.

먼저 조직내에서 충신 즉 믿을 수있는 사람, 바꿔 말하면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머리를 잘 숙이는 사람은 조심을 해야 합니다. 둘째 선후배를 많이 따지는 사람도 역시 조심해야 합니다. 왜그럴까요? 그것은 인간보다는 계급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서 계급을 보고 머리를 숙이는 것이지 사람을 보고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후배를 따지고 년차를 따진다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년차를 따진다는 그 자체가 사람보다는 계급을 우선적으로 한다는 증거 입니다. 계급을 보고 머리를 숙이는 사람은 위사람의 계급이 사라져 버리면 절대로 머리를 숙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지만 윗사람들이 가장 크게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랫사람으로 부터 인사를 많이 받는다고 하여 자신에게 충성한다고 여기지는 마십시요. 그것은 사람에 대한 인사가 아니라 내가 가진 직책에 대한 인사이며, 내가 가진 권한에 대한 인사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수많은 직책과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대단해서 아랫사람들로 부터 인사를 받고, 忠을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자신도 위사람에게 인사를 할때 계급에 대해서 인사를 하면서도 자신의 밑에 있는 사람은 그러질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인간이 가진 모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진심의 忠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내 스스로 아랫사람들에게 직책의 권한을 부리지 않을 수록 아랫사람들이 충성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결국은 德과도 연관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실천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德을 가지고 행하는 사람은 어딜 가서도 칭송을 받습니다. 그 만큼 값어치가 있기도 하지만 그만큼 어렵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왜그럴까요? 그것은 인간이 이기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곧 인간이란 불안전하고 불완전한 생명체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내 능력이 부족하여 德이 별로 없다고 해서 믿을 수있는 충신을 옆에 둘 수는 없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가능합니다. 단 사람을 제대로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아랫사람의 언행을 잘 살피면 됩니다. 아랫사람들 중에서 년차를 따지지 않고, 선후배를 따지지 않고,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사람이 충신의 소질이 많은 사람입니다. 잘못 생각하면 위아래를 무시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계급을 인정하긴 하되 자신보다 밑에 있는 사람에게 계급을 내세우지 않는것이 곧 德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의사라하여 권위의식과 특권의식이 있다면 이미 꽝입니다. 간호사들 중에서도 권위적인 사람, 자신이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간호사들도 역시나 꽝입니다. 이 자체가 이미 내면 보다는 외형을 더 중시여긴다고 스스로 여기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병원에서 내가 당신(고객)을 치료하니 나에게 고마움의 표시을 바라는 것 자체가 이미 특권의식이 들어 갔다고 볼수 있습니다. 특권의식을 버려야 만이 고객들이 좋아하듯이 내가 가진 직책의 권한을 최소화해야 사람들이 따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직책이 아닌 먼저 인간대 인간으로서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이 그 만큼 윗사람에게도 인간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측면에서 말을 해야 충언이 나오는 것이지, 계급적측면에서 말을 하면 위사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려고 자신도 모르게 아첨의 말이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먼저 사람을 보면서 말을 하므로 위사람의 입장에서는 좀 삐딱해보일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권위적인 사람을 상당히 싫어합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 권위에 거부하는 언행이 조금 섞이게 됩니다. 그것이 위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리게 되지요!.....
이렇게 본다면 확실히 충신은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자신을 거부하고 무시하는 듯한 언행을 종종 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 나에게 충고를 해주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권위와 계급을 벗어 던지는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야 충신 즉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가 계급이고 둘째가 인간인 사람이 모이는 곳이 곧 조직이라는 곳입니다. 조직은 질서라는 것이 있어서 계급을 우선적으로 내세울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인간대 인간을 먼저 내세우는 사람은 조직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미가 있고 情이 있고 진심으로 사람들을 잘 대해주는 그건 사람은 오래 버티지를 못하고 직장을 그만 두는 일이 많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다닌다고는 하지만 흥이 나지 않고 재미가 없는 곳에서 능력을 발휘하기란 더욱 쉽지 않으며, 이러한 기운이 위사람들의 눈에는 곱지 않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진정한 충신을 찾기란 이처럼 어려운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인간을 먼저 내세우는 사람입니다. 아마 주위에 이런 사람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비록 대단한 능력이나 실력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서 물질적 이익을 주지는 않는다고 해도 일단 믿을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왜야하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지적할때 속마음에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순수하게 나를 꾸짖기 때문에 그 만큼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다. 과연 주위에 자신에게 진정으로 꾸짖어 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기업체나 작은 부서나 아니면 개인에게나 아무런 보상없이 나를 위해서 질타를 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발전이 되는 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재는 작은 안목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자신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장기적으로 제공해주는 사람이 인재입니다. 나에게 채칙질을 해주는사람이 인재이며, 그 인재는 일단 나를 믿음으로서 그러한 충고(충언)이 나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그 사람에게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내 스스로 순수한 면이 부족하다면 바로 옆에 충신이 있어도 충신임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통 오랫도록 직장생활을 한 사람은 계산을 하는 버릇이 들어 있기에 사람을 잘 믿지를 않습니다. 끝까지 계산을 합니다. 계산에 또 계산을 합니다. 이것은 곧 의심입니다. 의심은 의심을 불러 일으켜서 끝없는 의심을 합니다. 의심을 끝없이 하게 되면 충신은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 버립니다.
진정한 인재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 스스로 인재를 멀리하는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찾기가 쉬울 것 같으면 인재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을 테지요......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번에는 인재고르기 세번째 글을 올려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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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재되기..

 

인재 고르기의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 저는 약간은 능동적인 자세에서 몇 가지를 접근하고자 합니다. 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하여 조직의 발전을 이루려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인재 고르기 입니다. 단, 그 환경에 맞는 인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그 대상 인재도 그 조직이 자신의 가치관과 맞는 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의 경험과 학습에 의해 현상들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에 따라 관계인들의 유,무능도 판단 할 것이고요.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능력과 학식을 가지고 있고 어디에서 무슨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평가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어느 촌부님이 처음에 언급하신 직책과 권한. 권력이라고 까지 말씀하셨는데 여기에 따른 내용들도 다양한 시각과 경험에 따라 많은 평가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직책을 가지신분 아님 일선에서 업무를 보시는 분 공히 다른 눈높이와 시각으로 현상을 판단하려고 할 것입니다. 각기 다른 업무와 책임을 가진 직원의 평가는 최소한 피 평가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 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인재의 개념도 여기에서 달라 질 수 있습니다. 자기의 틀 안에서 하부직원을 선정했을 때 자신의 눈으로는 정확한 인재일 수 있어도 조직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는 잘못된 판단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는 노무현 정권의 인사정책에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재를 고르기는 많은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재 되기는 이보다는 쉬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전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마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맘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본다고 해서 꼭 그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거나 자기 관점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통된 토대를 찾기도 쉬울뿐더러 자신의 관점을 원활하게 표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경험들을 통해 그 사람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인재의 상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회시의 관점에서 볼때는 일반적인 기준에서의 인재보다 조직 또는 부서에 필요한 인재가 중요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뛰어난 능력과 학식을 가진 인재도 조직에서 그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인재일 수 없을 것입니다.
인재 고르기 만으로는 많은 부분의 위험과 시행착오를 경험 할 수 있겠지만 직원 개개인의 인재 되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인재 고르기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재의 능력발휘는 서두와 같이 조직의 근본적 목표를 중심으로 상사, 부하직원 동료 등 다른사람의 입장에서 경험하고 그들의 시각에서 판단함이 우선 될 때 보다 쉽게 되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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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어느 촌부입니다.
인재고르기 세번째 글을 올려 볼까 합니다.

중견 가수 이지만 386이상 세대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임희숙이라는 여가수가 있습니다. 임희숙은 가창력도 좋지만 그의 감정적인 내음과 자기자신 특유의 음색을 가지고 있으며,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서 사람의 감정을 자극시키는 창법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창법을 지닌 사람은 비록 상업성은 떨어져도 지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고정팬들과 같이 늙어 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갑자기 여가수를 꺼집어 낸 것은 그 임희숙의 노래중에서 "나 하나의 사랑은 가고"라는 노래 때문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임희숙이 생각나며, 임희숙 하면 먼저 이 노래 제목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이 노래는 상당히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해 왔는데, 그 이유는 노래자체의 곡도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가사내용이 사람의 마음을 울리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 노래를 좋아합니다. 그 노래 가사중에서 "허리가 휠것같은 삶의 무게여--"라는 대목을 좋아합니다. 참으로 한이 서려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며 상당히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왜야하면 실제 허리가 휠것같은 삶의 무게를 느껴야 정신적 성숙이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과연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언제쯤 삶의 무게를 느껴 볼까요?...... 아마도 가족을 꾸미고 생활의 터전을 잡는 30대 중반부터 이 삶의 무게가 시작됩니다.
멋모르는 10대, 뭐든지 할수 있으며, 자신의 인생은 필히 성공의 인생이 될것이라고 확신하는 20대, 인력으로는 뭔가 모르게 안되는 것이 있다고 막연히 생각이 드는 30대 초반을 거쳐야만 조금씩 삶의 무게는 자기 자신에게 다가옵니다. 빨리 시작되는 사람은 10대에서도 시작이 되며, 늦은 사람은 50대에 시작하기도 합니다만, 보편적으로 30대 중반부터 시작을 합니다. 자식을 기르고 배우자와의 관계, 친족들과의 관계.... 시간은 흘러가고 세월은 흘러가면서 나이는 먹어가는데 10년전의 생각과는 틀리게 진행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흘러나오기도 하며, 잘된 사람들(친구,친척,매스컴에서 성공한 사람......)을 보면서 난 이게 뭔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나도 밖에 뛰쳐나가 성공을 하고는 싶은데... 마음은 굴뚝같은데...막상 나가지도 못하는 내자신의 허약함을 스스로 느낄때 오는 슬픔은 직장인 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현상입니다. 현실의 직장생활이 만족스럽지는 못해도 성공의 보장이 없는 바깥세상보다는 안전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직장인 들이 부지기 수 입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꺼집어 내는가 하면 그 만큼 사람은 주위의 환경을 이겨내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내 의지는 내 정신은 이러고 싶은데 ... 나 혼자라면 어찌해 볼텐데....
주위의 사정이 나를 족쇄에 묶어두는 시기가 30대 중반이며, 정신적 고통도 30중반부터 시작이 되며, 이 정신적 고통은 내가 눈을 감기 까지 연결되기도 합니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분들이 아직20대라면 부모님의 살아온 삶이 절대로 쉬운 삶은 아님을 이해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 만큼 자식을 키우고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동반되는 것이며, 시간이 흐를 수록 자기 자신도 모르게 한(恨)이 쌓이게 됩니다. 보모님들은 전부 한이 서려 있다고 보면 됩니다. 단지 그 한이 많다 적다하는 차이만 있을뿐입니다.
앞글에서도 말했지만 그만큼 인간은 나약합니다. 강하질 못합니다. 강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 만큼 삶의 무게와 고통을 겪어보질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 삶의 무게는 생각보다는 상당한 고통을 수반합니다.
이런 삶의 무게속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주 많습니다. 청아의료재단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금 당장 여길 떠나면 갈 곳이 막막합니다. 그래서 위사람의 눈치를 보고 굽신거려야 합니다. 기분나쁜 일이 있어도 밖으로 노출시킬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삶의 무게와 조직의 환경, 그리고 수직적 계급사회에서 오는 스트레스등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도 모르게 책임회피 경향이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과거 젊었을 때는 책임회피현상이 상당히 비굴하고 못난 사람의 행동 같지만 자신도 모르게 점차로 그렇게 되어가는 현실을 느끼게 되는 것이 직장인들의 일반적 마음입니다. 그 만큼 나약하지요....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누구나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특히 성인이 되면 자아의식이 성립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언젠가는 성공할 인생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지금의 인생은 잠시 쉬어가는 인생이다..... 지금의 고통은 나중에 성공을 위한 훈련에 불과하다...... 지금의 현실은 가짜인생이다... 진짜인생은 조만간에 올것이다.... 딴 놈들은 몰라도 난 틀려.... 지금 이모양 이꼬라지를 하고 있어도 언젠가는 대박이 날것이다.... 진짜인생은 따로 있다.....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아니라고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나약함이라는 마음과 동시에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그것은 자신이 이 세상의 중심이자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지만 마음속의 자신은 여전히 주인공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현실을 인정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여전히 꿈속을 헤매고 있으며, 현실을 인식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위에 "잘못을 인정한다(합니다)" "그 부분은 나의 잘못(과실)입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을 몇사람이나 보았습니까?........생각해 보십시요. 친구나 친척 주위에 아는사람, 직장동료, 직장상사, 부하직원....등등 ...아마도 생각이 쉽게 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있다면 행운일정도 일 것입니다.
직장인들이 잘못을 인정한다라는 말을 내뱉기가 정말 힘듭니다. 왜냐구요? 앞에서 말했잖습니까! 주위환경과 삶의 무게 때문에 책임회피 현상이 자동으로 몸에 스며든다구요!...잘못했다는 말을 했다가 어떤 화를 당할지 모르는데 쉽게 나올리가 없지요... 또한 인간의 내면에 상존해 있는 자존심이 있어서 더욱 힘이 듭니다. 자신보다 잘난것 없는 사람에게 "잘못했다" "과실을 인정합니다"라는 말이 어찌 쉽게 나오겠는지요....그저 머리만 숙인체 아무말 없이 꾸중이 끝나기만을 기다립니다.....이 직장 때려치우면 저런사람에게 뭐하려 잘못했다는 소릴를 하겠으며,...나도 이 직장만 나가면 인정받는 놈인데.....참자 참자 또 참자...어휴...내 팔자아!...
한번 쯤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말은 그만큼 일반인들이 하기 힘든 말을 하는 사람이 곧 인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재를 자꾸 기업적 측면에서 보질 마십시요. 그러면 글을 읽음에 객관성이 흐려집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을 의미하는 바가 더 큽니다. 잘못을 인정한다라는 말은 그 만큼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자신이 이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며,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며, 세상이 내 뜻대로 제대로 되지 않으며, 이렇게 그냥 막연히 귀인이 나타날것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뭔가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만이 "잘못을 인정합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물론 전부는 아닙니다.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고 냉혹한 현실을 제대로 보며,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뒤집어서 말하면 그 만큼 꿈속을 헤매지 않고 미래를 개척해 보고자 뭔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잘못을 당당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잘못을 인정함에는 그만큼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있다는 말도 됩니다.
타인들은 꺼리는 것을 자신이 인정하고 책임을 진다는 것은 그 만큼 그릇이 커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인정의 말을 이용하여 제거 시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떤 조직체를 가도 마찬가지 입니다. 즉 조직체에는 간사한 소인배도필히 있기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의 잘못을 교묘히 이용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인재는 평인들과는 분명 틀린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업적으로서만 인재를 판단해서는 아니됩니다. 외형이 화려한 인재는 주위로부터 시선을 받기에 자동으로 거만해지기 쉽상입니다. 외형이 화려했다는 것은 그 만큼 삶의 무게를 모른다고 볼수 있으며 고생을 안해봤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잘 나갈때는 잘 할지 몰라도 위기의 상황에서는 어떨지 궁금해 집니다. 위기의 상황은 고통를 많이 겪은 사람이 인재입니다. 영원히 잘 나가는 기업도 없으며, 영원히 잘나가는 인생도 없습니다. 언젠가는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고통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10대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기고만장과 철부지의 행동이 많이 나옵니다. 머리를 위로 치켜들고 자신이 공주또는 왕자라는 무언의 언행표출이 있는 사람은 아직 영글지 않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즉 나이에 비해서 어리다고 볼수 있습니다. 정신적 성숙은 책으로 또는 이론으로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뼈속깊이 스며드는 삶의 무게와 고통을 겪어야만 진정한 정신적 성숙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 만큼 위험한것 고통스러운것을 많이 보았기에 왠만한 상황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주위에 잘못을 당당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냉엄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죽자살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노력을 죽자살자 하지 않는다면 말로만 현실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정말로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시간을 소비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낮춥니다. 자신이 이세상이 주인공이 아니기에 타인의 말을 받아들이고 충고 받는 것을 오히려 좋아하며, 고통을 더 경험할려고 합니다. 과연 이런 사람이 주위에 있습니까? 있다면 그 사람이 인재의 소질이 아주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반성하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보이지 않는 인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없는 것입니다.

제 글이 기업적 측면에서 보면 적극적이지 못하고 부정적 견해로 들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서 직장생활에 부정적인 요소가 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사람들을 제대로 알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인간이 아닌 내면속의 마음을 스스로 알자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알아야 타인들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보지 못한다면 그저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제대로 된 판단이 어렵습니다. 자신을 아는 것이 발전의 첫걸음입니다.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는 뜬구름만 잡습니다. 환경이 좋다고 해서 내가 잘났다는 자만은 절대 금물입니다. 환경은 언젠가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환경을 이겨내기란 정말 힘듭니다. 좋은환경이 나에게 다가오면 사람의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그만큼 타인을 배려하고 사물을 아름답게 봅니다. 하지만 반대로 어려운 환경이 나에게 다가오면 인간의 마음은 축소가 되고 그 환경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 납니다. 마음이 축소되었기에 남들을 볼 여유가 없어지고 자신만 알게 됩니다. 환경을 바꾸면 되지 않겠냐고 말할수도 있지만 그것이 어디 마음대로 됩니까? 그저 환경에 맞추어 내 마음을 조금 변화시킬 뿐입니다. 그리고 내 주위에 버젓이 적은 노력으로 잘된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데.... 그리고 비교를 하지 않을려고 해도 비교가 되는데.....어찌 마음이 편안해 지겠는지요?.... 인간의 원초적 욕심이라 할수 있는 재물욕, 출세욕(계급욕), 쾌락욕구가 있는데..... 이것을 이겨내면서 주위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마음편안히 있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정신은 강하질 못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보편적인 사람들을 말합니다. 물론 정신력이 강한 사람도 있지만 이것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환경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환경을 탓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자신은 현실을 제대로 본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저는 단지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자는데 있으며, 일반인들이 그냥 무심코 넘어가는 그리고 가벼이 여기는 곳을 제대로 살펴보자는 것이며, 생각의 깊이와 폭을 더 넓히자는데 주 목적이 있습니다. 생각의 폭과 깊이가 넓어지면 자연스럽게 그 동안 등안시 했던것에 그 어떤 것을 찾을수가 있으며, 이로 인하여 자신의 모습도 되돌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진정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그로 인하여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막연히 기업적측면에서 보면 자신의 주어진 직책에 묵묵히 일을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내면에 숨겨진 자신의 욕심과 감추어진 욕망을 현실의 냉엄한 상황에 맞추어서 괴리가 좁혀져야 자기스스로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일을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먼저 냉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다른 마음을 알아야 진정한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원천을 알아야 응용이 생기고 사고력이 생기며, 이에 적응력이 길러집니다. 그저 이론으로 눈으로만 봤다고 해서 발전이 생겨진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뼈에 사무치는 자극을 받아야 또하나의 나의 본 모습을 알수 있는 것이며, 이로 인하여 깊은 생각을 함으로써 자기발전의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기적 안목으로 보면 조직(가정, 기업, 국가...)에 가장 장기적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재물을 자랑하고픈 마음, 남자가 예쁜 여자를 찾는 마음, 여자가 돈 많은 남자를 더 좋아하는 마음, 자신의 권한(권력)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 살고 싶은 마음, 먹고 싶고 자고싶고 쾌락을 즐기고픈 마음..... 등은 인간이 가진 원초적 본능입니다. 이것을 부정하지는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을 이겨낸다면 이미 인간이 아니라 예수요, 부처요, 해탈의 경지가 됩니다.
여자가 애인으로부터 사랑을 자꾸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듯이 남자 역시 애인이 그만큼 값어치 있는 여자인지를 자꾸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직장에서든지 자신의 직책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확인의 마음을 최소한 줄이는 사람이 그 만큼 자제를 하고 인내를 하는 사람이라고 볼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한을 충분히 이용해도 아무도 뭐라할 사람이 없는데 오히려 자신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사람이 그 만큼 인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천년간 동양권 문화에서 누누히 강조되고 또 강조되는 德이라는 것입니다. 德을 행하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줄 아십니까? 德을 행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원초적 본능을 최소화 했다는 것이며, 달리 말하면 그 만큼 자제력과 절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제와 절제는 자기 스스로 수련함에서 오는 것이며, 이런 수련은 책만 읽는다고 되는것이 아니라 경험과 고통을 수반해야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삶의 무게를 꺼집어 낸것입니다...
할 말은 끝도 한도 없지만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원래의 생각은 인재고르기를 10회 정도를 올리려고 했는데 더 이상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윗분들이 보기에 약간 민감한 내용이 간혹 삽입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기에 인재고르기는 접기로 하고
이제 부터는 보편적이고 일상생활에서 도움이 부분에 대해서 글을 올려 볼까 합니다.
그리고 제가 올리는 글에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보편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은 완벽이라는 것이 없기에 항상 예외가 존재합니다.. 그 예외의 경우를 내세워서 반론을 제시하는 것은 어떤 곳에서도 나오게 되는 것이기에 토론은 결론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이렇게 여기고 보는 사람도 있다고 보아 주셔야 합니다. 제 글이 모든 사람에게 다가갈 수는 없습니다.. 그 어떤 유명한 사람의 글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자신의 생각이 완벽하고 또한 옭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의견도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체도 많은 경험과 깊은 생각 그리고 고통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 글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면 한 번쯤은 자신의 능력에 도전해 보십시요....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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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외부로 부터 보이는 인식이 중심이되어 살아가고 있는 이때 스스로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케 하는 좋은 내용 같습니다.
우리는 현재의 위치와 과거의 경험이라는 제한속에서 인식한 것을 실체라 우기면서 집착하는 경향이 아주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동쪽에 떠오르는 해를 보고 산골에 사는 사람은 산위에서 해가 뜬다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수평선에서, 또 도심에 사는 사람은 빌딩위에서 해가 뜬다고 서로 우기고 싸움을 합니다. 사실은 지구가 돌아가며 해를 맞이하는데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들 모두는 스스로가 겪은 경험에 의한 인식을 실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곳을 여행하고 경험한 사람은 좀 더 실체에 가까운 판단과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직장내에서도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한정된 스스로의 인식만이 옳다는 생각은 갈등을 낳을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갈등의 요인을 더 폭넓게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그 해결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합니다. 직급이 올라갈 수록 실체에 더 접근하기위한 노력과 인식간의 충돌에 대한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그런 노력이 더해져야 겠지요.
쉬운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길바닥을 가죽으로 덮는 것 방법뿐만 아니라 가죽신을 만들어 신고 걷는 방법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시는 어느촌부님 감사드리며 계속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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