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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AB

[스크랩] 몰락한 사브(SAAB)의 기막힌 역사 ③

by dude C 2012. 1. 24.

1978년 세계 최초로 실내 에어필터가 적용된 900을 발표한 사브는 80년대 들어서도 고성능을 무기로 승승장구했다. 기술이 쌓이면서 각종 편의장비와 안전장치를 더한 모델을 연이어 출시했고, 77년 승용차로는 처음으로 터보엔진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85년에는 안전벨트 프리텐셔너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사브는 경쟁사인 볼보와 함께 미국 시장에서 외면 받으며 서서히 내리막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다 80년대 말 9-3와 9-5의 등장은 사브 부활의 신호탄으로 주목받았다. 

 

 

 고성능과 안전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 온 사브는 1976년 일반 승용차에 터보 시스템을 적용,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터보 시스템은 포르쉐나 페라리 등의 일부 고성능 스포츠카에만 적용되던 전유물과 다름없었다. 당연히 터보가 장착된 99의 성능은 기존 모델에 비해 무려 34%나 증가했고, 속도 또한 시속 198㎞로 향상됐다. 이 때부터 사브는 '고성능 세단'의 이미지를 확고히 굳히며 사브만의 독창적인 아이덴티티 구축을 완성하게 된다.

 

'최초'를 기술 트렌드로

사브는 78년 세계 시장에서의 인기를 발판으로 900을 선보였다. 900은 99를 조금 키운 차체에 1,984㏄ 엔진을 그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2년 뒤인 80년 사브는 900에 터보 시스템을 적용했다. 당시 세단형 승용차에 터보 시스템을 적용한 것은 사브가 처음이다. 이어 83년에는 스포츠세단 ‘에어로’와 900 터보 16S를 발표했다. 여기서 ‘16’은 16개의 밸브가 적용된 DOHC를 의미한다. 8개의 밸브가 적용된 SOHC에 비해 DOHC는 출력이 월등해 고성능 세단이라는 이미지와 부합,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이 시기 사브의 또 다른 발전은 상위 버전 모델의 가세다. 사브는 전통적으로 작지만 강한 차에 집착을 보여 왔다. 하지만 주요 시장인 미국 내 큰 차 선호경향을 외면할 수 없어 9000 시리즈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79년 개발에 들어간 지 5년 뒤인 84년 사브는 최고급 모델인 9000을 데뷔시켰다. 9000은 900보다 한 단계 상위급 차종으로 엔진은 피아트, 란치아, 알파로메오가 함께 개발한 4기통 2,000㏄급 DOHC를 사용했다. 물론 지금이야 DOHC가 일반화 돼 있지만 당시 DOHC는 아무도 하지 않는 무모한 기술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사브는 고성능을 이루기 위해선 세단이라도 터보와 DOHC 기술적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이를 감행했고, 결과적으로는 각 자동차회사가 터보와 DOHC 엔진을 저마다 사용하기 시작하게 만들었다.

 

한편 이처럼 최고급 차종 출시와 함께 사브는 월드전략의 일환으로 회사 마크를 그리핀(Griffin)으로 변경했다. 그리핀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동물로 상반신은 독수리의 형상을, 하반신은 사자의 모습으로 묘사돼 모든 새와 짐승의 제왕으로 일컬어진다. 그리핀을 사용하게 된 데는 사브가 모든 자동차의 제왕으로 군림하겠다는 명백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를 통해 브랜드 위상을 굳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겨 명실상부한 프리미엄 차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와 같은 사브의 브랜드 전략은 86년 900 컨버터블로 어느 정도는 성공을 하게 된다.

 

 

86년 사브는 900의 컨버터블 버전을 발표했는데, 98년까지 900 모델 가운데 판매량이 15%에 달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던 차종이다. 특히 공기저항을 최소화 한 원형의 디자인은 ‘아름다움의 극치’로 평가되며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사브는 또한 88년 미끄럼 방지 기술인 TCS 기능이 적용된 9000CD를 내놓으며, 기술의 사브 이미지 구축에도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전통적으로 고성능의 사브를 유지하려면 남보다 앞서 가는 기술, 또는 먼저 적용하는 과감성을 그야말로 가감없이 발휘했던 것이다.

 

 

하지만 변화하지 않으면 영원한 게 없다는 것처럼 사브는 80년대 중반부터 차츰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안전한 고성능 자동차 이미지 구축에는 성공했지만 이 같은 이미지로는 점차 디자인에 눈을 떠가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버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사브 경영진이 “소비자들의 디자인 선호 경향은 임시적인 현상에 불과하고 다시 전통을 중시하는 성향을 보일 것”으로 자신하면서 사브는 변화의 적절한 시기를 놓쳐버리는 아픔을 겪게 된다.

 

86년 4만7,000대가 판매된 사브는 이를 정점으로 판매량이 매년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특히 주력 시장인 미국 내에서의 판매량 감소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고, 결국 10년 뒤인 96년 사브의 판매량은 2만대로 주저앉았다. 이처럼 사브가 급격히 쇠퇴한 데는 무엇보다 지나치게 전통을 고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전통을 고수한 나머지 빠른 변화에 익숙한 소비자들의 성향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학자들은 사브의 추락에 대해 세 가지 원인을 지적했다. 첫째는 소비자 요구에 대한 무관심, 둘째는 고비용 구조, 마지막 세 번째는 규모가 작은 스웨덴 내수시장이었다. 이들 세 가지가 맞물리며 사브는 겉잡을 수 없는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사브는 90년 어려움에 처한 승용차 부문을 구하기 위해 미국 GM과 손을 잡게 된다. GM은 사브 오토모빌 AB의 주식 50%를 인수했는데, 그 이유는 고급 브랜드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캐딜락을 앞세웠던 GM은 사브가 유럽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인지도가 넓은 점을 주목했다. 따라서 GM 내에서 제대로 시너지를 높일 경우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부활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9-5와 9-3의 등장

시장점유율 하락과 소비자 외면이 겹치자 사브는 일단 원인 분석에 나섰다. 그 결과 고객중심의 차를 만들기로 하고, 대대적인 변화를 가하게 된다. 사브는 우선 벤츠와 BMW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디자인 수정에 착수했다. 이와 함께 판매차종 다양화에도 치중했다. 또 새로운 전략가도 긴급 수혈했고, '단순히 튼튼한 차'에서 벗어나 '효율' 위주로 체제를 다져갔다.

 

 

그러나 사브는 여기서 한 가지 신중한 선택을 놓고 기로에 서게 된다. 소비자 중심의 차를 만들기야 하겠지만 디자인을 어떻게 가져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즉, 완전 새로운 디자인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전통을 담아내는 디자인을 가져가느냐가 논란이 됐다. 이처럼 중요한 갈림길에서 사브는 결국 전통을 택했다. 전통을 버리는 순간 사브의 기존 소비자마저 떨어져 나갈 것이란 분석이 우세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사브는 GM에 인수된 바로 이듬해 9000CS를 내놓았다. 이 차는 세계 최초로 CFC 에어컨 시스템과 측면 보호개념이 적용된 모델이었다. 그러나 9000CS의 경우 사브만의 독창적인 기술력은 유지됐으나 디자인 면에선 큰 변화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93년 사브는 900의 후속차종인 뉴사브 900을 발표, 변화의 계기점으로 삼고자 했다. 뉴사브 900은 뒷좌석에 3점식 안전띠를 적용했고, 9000CS에서 선보였던 측면 보호개념을 뒷좌석까지 확대, '안전의 사브' 이미지를 이어갔다. 또 원형 디자인을 일부분 적용, 디자인 변화의 시험차로 삼았다.

 

 

물론 디자인 변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소비자들에게 사브가 변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여세를 몰아 사브는 이듬해 뉴사브 900 컨버터블을 추가했는데, 이 차는 원형으로 스타일을 전환한데 이어 뒷좌석 공간을 확대하고, 뒷유리 열선 및 소음방지(NVH)를 강화한 덕에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된다.

 

 

96년 GM은 GM 출신의 구조조정 전문가 로버트 헨리 사장을 사브의 책임자로 앉혔다. 로버트 헨리는 취임 이후 소형차 생산방침을 철회하고, 생산전략과 소비자 타깃층을 새롭게 설정했다. 또한 사브의 전통적 스타일에 과감히 미국식 디자인을 덧칠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차종이 바로 사브 9000의 후속차종인 9-5다. 9-5는 V자형의 라디에이터 그릴이 적용된 사브의 첫 미국식 스타일 자동차로 알려져 있다. 97년 발표된 9-5가 사브만의 독특한 머리보호 시스템(SAHIR, Saab Active Head Restrain)으로 이름을 날렸다면 이듬해 출시된 9-3는 사브의 첫 터보 디젤엔진이 탑재된 모델로 유명하다. 이를 통해 고성능의 이미지는 잇되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여과없이 드러냈던 셈이다.

 

 

-재미나는 뒷 이야기 : 사브와 5명의 레이서

지난 95년 사브는 용인 모터파크(현 스피드웨이)에서 사브 묘기대행진을 펼쳤다. 고성능 세단의 이미지를 국내에 고착시키기 위해 5명의 레이서를 초청, 사브 드라이빙쇼(Driving Show)를 벌인 것. 고속으로 주행하다 360도 회전을 하고, 두 바퀴로 달리고, 180도 회전을 하며 보여준 사브만의 고성능은 국내에서도 익히 알려져 있다. 물론 이 같은 묘기는 사브의 고성능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당시 참석자들은 레이서들의 묘기도 그렇지만 레이서들의 의도대로 자동차가 움직여 준다는 점에서 사브에 대해 강한 인상을 갖게 됐다.

 

당시 국내에 사브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터여서 '항공기를 닮은 차'로만 인식됐던 사브는 이를 계기로 이미지 메이킹에 주력, '사브만한 차가 없다'는 인식을 널리 퍼뜨리게 된다. 그 결과 사브 마니아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일부 전문직 여성은 사브를 신분 상징으로 여기며 앞 다퉈 구입했다. 특히 900은 아름다운 스타일로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구입자의 대부분은 방송인, 전문직 등 비교적 자유로운 직업군이 적지 않았다.

 

출처 - http://blog.daum.net/carmania486/15949700

출처 : 사브오너스클럽
글쓴이 : 김경섭[순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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