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브의 9-5가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왔다. 직렬 4기통 2천300㏄ 엔진에 터보를 달아 260마력을
발휘하는 9-5 에어로는 고성능 4도어 세단 중에서 순위를 다툴 정도로 빠르다. 특히 터보가 작동하는 구간에서는 엄청난
가속력을 체험할 수 있다. 시속 200km 순항능력은 수입차 중 최고 수준인 별 다섯 개를 줘도 아깝지 않다
은색 알루미늄과 검은색 플라스틱의 콘트라스트가 강렬한 실내. 알루미늄 소재가 너무나 플라스틱스러운 것이 단점
적어도 뉴 9-5에 관한한 제원표는 잊어라. 압도적인 가속력과 고속주행능력은 수치로 표현할 수 없다
예전의 이미지를 살짝 남기고 완전히 바뀐 앞모습. 옆면을 보기 전에는 풀 체인지라고 해도 믿길 정도
시속 250km의 영역에서도 스티어링 휠은 안정적이다. 펀칭 가공된 가죽 아래 열선과 통풍기능을 넣은 시트도 별 다섯
개짜리
블랙아웃된 헤드라이트는 검은 아이섀도를 듬뿍 칠한 북구의 미녀 모델처럼 야성미가 넘친다
스포티한 디자인의 17인치 휠에 신겨진 컨티넨탈 스포츠컨택2 235/45 VR17 타이어. 고속주행 후 피어나는 냄새가
감미롭다
GM계열 차에 널리 쓰이는 에코파워 엔진에 고압 터보를 달아 최고출력 260마력을 뽑아낸다. 겉모습은 평범하지만
실력이 장난 아니다
모터바이크로 운전을 시작한 기자는 뒷바퀴굴림차 신봉자다. 드로틀을 열어 뒷바퀴를 굴리면서 코너를 박차고 나가는
그 호쾌함과 느긋하게 밀어 주는 승차감. 뒷바퀴굴림의 맛을 알고 난 후에는 앞바퀴굴림차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첫차도 오래된 중고이긴 했으나 어쨌든 독일제 뒷바퀴굴림차였다. 누군가 앞바퀴굴림 예찬론을 펴면 “앞다리로 뛰는
동물을 본 적이 있니?”라고 반문하곤 했다. 기자의 편견에 따르면 꽤 운전이 재미있는 앞바퀴굴림 스포츠카조차도
결국은 FF의 나쁜 버릇을 숨기고 있을 뿐, 뒷바퀴굴림만은 못하다.
논쟁 끝에 누군가 “그렇다면 스칸디나비아의 차들을 부정한다는 거냐”라고 말했다. 사실 그랬다. 예전의 지루하고 뒤뚱
거리는 앞바퀴굴림 볼보는 와이프에게 사 주고 싶긴 해도 절대로 내가 몰고 싶은 차는 아니었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액셀 페달을 밟을수록 바깥쪽으로 부풀어 버리는 언더스티어 때문이다. 운전자가 바라보고 싶은 곳은 깊숙한 코너 저편
이지 인도의 가로수가 아니다. 그렇다면 사브는?
눈 깜박할 사이 시속 250km에 도달
사브 뉴 9-5 에어로에 올라 처음 놀란 것은 탁월한 가속력이다. 시내에서 유유자적 달리다가 고속도로에 올라 액셀러레
이터에 힘을 가하자 9-5 에어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속도계 바늘을 법정 규제치 바깥으로 밀어낸다. 직렬 4기통 2천300㏄
엔진에 터보를 달아 260마력을 발휘하는 9-5 에어로는 수퍼카급 이하의 4도어 세단 중에서는 순위를 다툴 정도로 빠르
다. 수입되는 대부분의 차를 운전해 보았으나 대배기량 모델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예리하게 가속되는 차는 드물다. 0→시
속 100km 가속은 8.2초에 지나지 않지만 터보가 작동하는 구간에서는 수치를 뛰어넘는 엄청난 가속력을 체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속방식이 무척 이질적이어서 더욱 빠르게 느껴진다. 자고로 자동차라는 탈것은 연료가 폭발하는 힘으로 피스
톤을 밀어내고, 크랭크를 돌려 바퀴에 회전력을 전하는 물건 아니던가. 그러나 9-5는 그 익숙한 ‘엔진의 회전감각’이 없
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마치 거대한 진공상태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속도가 붙는다. 최고시속을 확인하려 한
것도 아닌데 고속도로의 과속방지 카메라를 지나 버렸고, 가속력이나 한번 시험해 볼 요량으로 페달을 밟았는데 순식간
에 시속 250km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진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가속감은 시속 100km 정도로 달리다 추월가속을 할 때 더욱 자극적이다. 특히 감속 중
이던 차가 다시 가속 모드로 들어갈 때는 어느 정도 뜸을 들이기 마련이건만 이 비행기 가문 출신의 9-5 에어로는 어느새
가속모드에 돌입해 공기를 가르고 있다. 퍽 하고 목이 뒤로 젖혀지는 충격도 없이 말이다. 그러나 최근의 터보 엔진이 터
보차저의 존재감을 없애고 배기량이 높은 차인 것처럼 세팅되는 것과는 반대로 뉴 사브 9-5 에어로는 운전하면서 언제나
터보의 폭발을 느낄 수 있다.
타코미터보다 솟아오르는 부스터 게이지를 쳐다보고 있는 편이 훨씬 흥분된다.
시내 주행에서 안락성 중시형으로 보였던 서스펜션은 현행범으로 체포되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고속에서도 묵묵히 제
할 일을 다한다. 출렁거리는 일도 없고 비틀대는 일도 없다. 시트를 통해 전해 오는 감촉에서 요철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 존재가 속도를 줄게 만들지는 않는다. 시속 200km 순항능력은 수입차 중 최고 수준인 별 다섯 개를 줘도 아깝
지 않다.
서키트에서 즐기는 4도어 세단의 매력
내친 김에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모 서키트로 차를 데리고 들어갔다. 시판차인 이상 아무리 싸구려라도 와인딩 로드에서
낙제점을 받을 리는 없다. 그러나 서키트에서는 밑천이 금세 드러나게 마련. 스포츠성이 떨어지는 차로 서키트를 달리면
한 바퀴도 돌기 전에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진다. 뒷바퀴굴림 매니아를 고속주행에서 놀라게 한 벌(?)로 가혹한 조건을 택한
셈이다.
액셀러레이터를 바닥까지 밟고 가속을 시작하면 뉴 9-5 에어로는 앞바퀴를 허공에 띄울 기세로 뛰쳐나간다. 앞바퀴 접지
력이 스윽 하고 옅어지는 것이 영락없이 비행기에서 느낄 수 있는 이륙 모드다. 페달을 밟으면서 코너에 진입하면 앞바퀴
굴림차답게 슬쩍 바깥을 향하려고 하지만 스티어링 휠을 살짝 안쪽으로 꺾으면 그에 따라 앞바퀴가 즉시 반응한다. 차체
옆쪽으로 라인이 부풀지언정 다른 앞바퀴굴림차처럼 코너 바깥을 향해 뛰쳐나가려고 하는 일이 없다. 아니 거의 좌향좌,
우향우에 가까운 감각으로 방향을 바꾼다. 유턴 상황에서도 마치 뒷바퀴굴림처럼 돌아 버리는데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수십 분간 끝까지 타이어 타는 냄새가 가시지 않을 정도로 밀어붙이는 가혹한 테스트를 반복했으나 핸들링 특성은 끝까
지 뉴트럴을 유지한다. 타이어 그립력이 약해지는 것이 서서히 느껴질 때까지도 차체는 드라이버가 의도한 곳으로 정확
하게 움직인다. 9-5 에어로의 터보 엔진은 3천500~4천700rpm 영역에서 거의 평탄하면서도 빠르게 회전이 상승하는데,
이때 앞바퀴굴림 고출력차 특유의 토크스티어를 거의 느낄 수 없는 것도 인상적이다.
급가속과 급감속, 급격한 핸들링으로 하중을 이리저리 격하게 변화시켜도 차체의 자세 변화가 극도로 작은 것도 특징이
다. 차체를 한껏 기울어지도록 만들어 자세 변화를 강조하면 느리게 달려도 빠르게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시승기 사진을
찍을 때 자주 쓰는 트릭이다. 그런데 뉴 9-5 에어로는 빨리 달리고 있으면서도 자세변화가 적어 느리게 달리는 것처럼 사
진이 찍힌다. 사진기자의 푸념에 기자의 운전실력을 탓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한다.
어느샌가 모터바이크를 탈 때처럼 운전석에서 몸을 옆으로 기울이며 혼신의 힘을 다해 서키트를 공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기자가 그토록 좋아하는 바이에른 출신의 차를 서키트에서 탈 때도 느끼지 못했던 희열이었다. 이게 바로 사브
매니아들이 말하는 ‘맛’이란 것일까. 시승 내내 자칭 뒷바퀴굴림 매니아로서의 정체성이 위협을 받는다고 느꼈다. 그리고
사브 뉴 9-5 에어로를 몰고 서키트를 나설 때쯤에는 그깟 알량한 자존심은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앞으로는 지나가는 사
브 뉴 9-5, 특히 에어로를 만나면 환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줄 작정이다.
# 참... 안사고는 못배길만큼 맛깔스럽게 시승기를 올렸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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