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AB

[스크랩] 몰락한 사브(SAAB)의 기막힌 역사 ②

dude C 2012. 1. 24. 08:01

우여곡절 끝에 '92' 모델을 내놓은 사브는 1955년 3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개량된 변속기를 장착한 사브 93을 발표한다. 뒤이어 발표된 사브 96과 해치백 95. 60년대를 거쳐 7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는 사브 최고의 전성기로 꼽힌다. 이 시기 등장한 모델의 컨셉트는 '고성능, 실용성, 그리고 안전성'이었다.

 

사브가 처음 만들어 낸 '모델 92'는 유선형 차체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물론 이 스타일은 사브의 독창성으로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왔고, 지금도 기본적인 스타일은 변함이 없다. 사브92의 또 다른 인기비결은 튼튼함이었다. 항공기 기술로 만들다보니 무게 배분에 신경을 썼고, 이는 곧 고속주행에서의 안정감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이 사브를 ‘안전한 차’로 인식하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실제 ‘92’는 1947년과 단종 시점인 1959년까지 2만대 이상이 팔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사브 93과 자동차경주

1949년 첫 모델을 선보인 사브는 어떻게 하면 자동차를 많이 판매할 수 있을 지 고민했다. 무엇보다 경영진은 사브만의 안정성과 독창성을 드러내기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를 고안하는데 골몰했다.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댄 이들의 결론은 결국 ‘자동차경주’ 참여로 모아졌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자동차의 본고장으로 평가받는 유럽대륙에선 자동차경주가 단시간 내 명차를 만들어 내기에 더없이 좋은 마케팅 도구였는데, 첫 모델인 ‘92’로는 경주에 출전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는 점을 경영진은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사브는 두 번째 모델 ‘93’을 경주에 내보내기로 하고, 본격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물론 경주만을 위해 ‘93’ 개발에 나선 것은 아니다. ‘93’은 ‘92’의 명성을 잇도록 하되 경주차 버전을 별도로 만들어 경주에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했던 것이다.

 

 

1955년 사브는 드디어 33마력 3기통 엔진을 탑재한 ‘93’을 출시했다. 변속기는 '92'에 적용되던 것을 개량해 사용했지만 튜브가 없는 타이어를 사용하며 높은 관심을 끌었다. 사브는 93을 경주에 조금씩 참여시키며 기술을 발전시키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이듬해 사브는 ‘93’의 경주차 버전인 '94 소네트(Sonett)' 6대를 만들어 발표했다. 소네트는 ‘93’을 기본으로 한 경주용차로 경량 재질이 대폭 적용되어 중량이 500㎏에 불과했고, 최고시속은 160㎞에 달했다. 2인승이었으며, 사브가 개발한 최초 스포츠카로 널리 알려져 있는 차종이다.

 

사브는 소네트 제작을 통해 자동차경주에 본격 진출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사브는 당시 랠리스트로 이름을 떨치던 에릭 칼슨을 영입했고, 결국 사브 ‘93 랠리카’로 핀란드 100호 랠리에 참가해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에릭 칼슨은 1961년부터 63년까지 영국 RAC 랠리에서 3연승을 달렸고 62년과 63년 몬테카를로 랠리에서도 우승을 차지해 유럽 내 ‘사브’라는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셈이다. 물론 칼슨을 앞세워 사브레이싱팀은 유럽을 넘어 미국 랠리에서도 잇따라 우승을 차지하며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도 했다.

 

58년 사브는 경주 출전을 통해 얻은 기술로 첫 양산 스포츠카 시리즈 사브 93 750 GT를 발표했다. 소네트가 6대 한정 생산이었던데 반해 93 750 GT는 대량생산된 사브의 첫 스포츠카인 셈이다.

 

1956 saab super sport(sonett1)

 

 

사브의 진보

1960년대 들어 사브는 새로운 변신을 꾀하기 시작했다. 59년 내놓은 왜건형 사브 ‘95’의 등장에 이어 60년에는 93의 개량형인 ‘96’을 내놓았다. 96은 3기통 841cc 엔진이 탑재되었고, 1980년까지 20년간 생산된 장수모델로 기록된다. 기간 중 판매량만도 무려 54만7,000대에 달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은 차종이다. 이어 62년에는 사브레이싱팀의 랠리스트 에릭 칼슨이 랠리 우승 후 사브 몬테카를로 850의 원형이 된 사브 스포트 버전을 발표한다. ‘안전을 위한 사브’라는 이미지는 이 때 사브가 안전벨트를 처음으로 기본품목에 넣어 생겼다는 소문도 있으나 무엇보다 충격흡수범퍼와 자동차경주 도중 발생한 대형 전복사고에도 운전자가 큰 부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더 힘이 실려 있다.

 

1959 saab 93 GT

 

1966년 사브는 2인승 스포츠카로 V형 4기통 엔진이 탑재된 소네트Ⅱ(사브 97로도 불림)를 내놓고, 70년에는 변속기를 자동차 바닥에 적용한 소네트Ⅲ를 발표했다. 소네트Ⅱ와 소네트Ⅲ는 원형 모델인 소네트보다 세련된 스타일에 최고시속 170㎞의 고성능을 자랑했다. 이 같은 경량 스포츠카의 발표에는 사브 나름의 계산이 숨어 있었다. 사브는 회사의 비약적인 성장을 위해 무엇보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 진출이 절실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특히 유럽형 고성능 소형 스포츠세단의 개념인 사브 모델의 경우 경쟁력은 충분했다. 결국 소네트 시리즈는 유럽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미국 시장을 겨냥한 차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정작 미국 시장 진출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당시 미국의 대호황이 작은 차의 외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1960 saab 95 rear

 

60년대 미국은 경제적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아 국민들의 주머니가 넉넉했다. 먹고사는 걱정을 별로 하지 않고,

사람들은 크고 화려한 자동차에 관심을 돌렸다. 특히 미국에선 캐딜락, 뷰익, 링컨, 벤츠, BMW 등이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사브 모델은 대형세단이 아닌, 소형 스포츠세단이 대부분인 데다 일부 차종은 해치백 스타일이어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결국 사브는 미국 시장 진출의 야망을 뒤로 한 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브는 이 때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된다. 제 아무리 차의 성능이 뛰어나도 차체와 배기량이 작으면 미국과 같은 큰 시장에서 계속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사브는 몇 년 뒤 다시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이미 한 번의 실패를 경험했던 사브로서는 자동차의 배기량과 차체를 키웠고, 이를 위해 66년 독일 포드가 생산하는 4기통 1,500cc 엔진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듬해는 영국 트라이엄프사와 손잡고 4기통 OHV 1,709cc 엔진을 개발해 사브 99에 얹었다. 67년 등장한 사브 99는 훗날 수많은 사브 매니아를 만들어 낸 사브 900의 원형 모델이기도 하다.

 

1960 saab 95

 

글로벌 브랜드의 서막

1970년대 들어 사브는 세계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글로벌 브랜드 육성에 나서게 된다. 이미 60년대를 거치며 ‘안전하고 성능 좋은 차’의 이미지를 갖게 된 회사로서는 더 이상 유럽과 미국에 머물지 않고, 사브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러나 글로벌 브랜드로 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사브만의 독창적인 정체성이 필요했다. 경영진은 이 같은 전략에 따라 사브에 새로운 기술을 속속 적용했다. 이른바 ‘기술의 완성’으로 사브만의 브랜드를 차별화하고, 이를 다시 글로벌 브랜드 육성의 기초로 삼으려 했던 셈이다.

 

1965 saab sonett2

 

하지만 이 또한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이미 쟁쟁한 경쟁사들이 앞다퉈 성능경쟁에 뛰어들었고, 저마다 고성능 기술을 앞세우며 나름의 차별화에 나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브는 이런 와중에서도 틈새를 발견했다. 대부분 메이커가 성능경쟁에 몰두할 때 사브의 장점으로 꼽히는 안전성 강화에 매진했고, 여기에 운전자의 편리함과 직결되는 편의성 향상에 집중 투자했다.

 

1966 saab sonett2

 

스웨덴에 공장을 둔 사브는 북유럽 지역에 눈이 많이 온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눈이 많아 밤에 눈길을 가다보면 헤드라이트의 조도(照度)가 떨어져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헤드라이트 와이퍼를 장착한 때가 71년이다. 자동차가 다른 물체와 충돌했을 때 일정량의 충격을 흡수하는 범퍼와 열선 시트를 더한 때는 72년의 일이다. 연중 섭씨 영하를 밑도는 날이 많은 북유럽의 경우 이 같은 장치는 운전자를 편하게 하는데 더 없이 좋은 장치였던 셈이다. 실제 이들 기술이 적용된 사브 99는 73년 스웨덴 최우수차에 올랐고,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에만 주어진다는 영국의 ‘세이프티 트로피’를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사브는 본격적인 자동차사업 전개를 위해 자동차 부문에서 승용차와 트럭을 분리했다. 트럭은 ‘스카니아’로, 승용차 부문은 ‘사브’로 브랜드를 나누고 사브의 본사를 판매조직과 함께 스웨덴 니케핑 지역에 설립했다.

 

사브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74년 사브는 99 세단 라인업에 3도어 해치백 버전인 콤비 쿠페(Combi Coupe)를 추가했다. 73년 컨셉트카로 등장시킨 뒤 사람들의 호응이 잇따르자 이듬해 양산형을 발표한 것이다. 물론 5도어 해치백은 몇 년 뒤인 75년에 등장시켰다.

 

1969 saab 96 usa version

 

'고성능'과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고집해 온 사브는 76년 성능 면에서 놀라울 만한 사건(?)을 터뜨린다. 일반 승용차에 터보 시스템을 과감히 적용한 것이다. 이 일은 지금도 사브 역사상 가장 탁월한 선택으로 꼽히고 있다. 사브 99 터보는 출시 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데 충분한 차였다. 이 때만 해도 포르쉐나 일부 고급 스포츠카에만 터보 시스템이 적용됐는데, 사브는 이를 한 단계 끌어내려 승용 세단에 적용했던 것이다. 세단형 승용차를 타면서 스포츠카와 같은 운전의 묘미를 원했던 당시 젊은이들은 사브 99 터보를 갖고 싶은 차의 반열에 올리며 열광했다. 또한 사브 99 터보는 미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사브의 명성을 견고히 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수행했다. 사브는 99 터보로 시속 198㎞를 달성하게 되었고, 이에 자극 받은 경쟁사 또한 승용차에 잇따라 터보 시스템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재미나는 이야기는 3편에 계속됩니다. ㅎㅎ,,곧 올리겠습니다.

 

 

1970 saab 99

 

1974 saab sonett3

1977 saab 99 turbo

 

1969 saab 96 rally

SAAB 96 인테리어

 

 

출처 - http://blog.daum.net/carmania486/15949700

출처 : 사브오너스클럽
글쓴이 : 김경섭[순천] 원글보기
메모 :